추억더듬기 1991 ~1992 [1] 野 球


언젠가부터 많은 팬들이 예전의 근성을 그리워합니다.

동계시즌이면 항상 보도되던 해병대 훈련과 팬티만 입고 얼음장을 깨고 들어가는 훈련, 그리고 게임중 일어나던 80년대 스타들의 승부심 가득한 플레이들....

삼성팬들은 예전 80년대의 불방망이를 그리워하고 기아팬들은 해태시절을 그리워하죠. 한화 팬들은 대부분 이글스 시절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그리워합니다.

롯데팬들 역시 예전의 옅은 파란색 유니폼의 롯데를 그리워합니다. 특히 92년을 전후로 해서 많이들 추억을 밟으려 하고 그 때의 스타들을 아스라히 그리워합니다.

전준호 공필성 박정태 이종운 김종헌 김선일 염종석 윤학길 박동희 강성우 마해영 임수혁 김민재 등등.....

*예전의 자료들을 잃어버린 관계로 글의 대부분을 머릿속 아련한 추억을 더듬어 쓰는 글이라 부분부분 오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전 천재가 아닌 관계로 머릿속 용량의 한계에 입각하여 90% 롯데 위주로 적겠습니다. 행여나 잘못된 부분 있으면 지적바랍니다)


강병철 감독은 젊은 감독으로써의 우려를 씻어내며 1984년 롯데의 첫우승을 거둡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이름 최동원과 김민호 조성옥 한문연 등의 신인 (조성옥 한문연은 강병철 감독의 동아대 시절 애제자이기도 했음.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강감독의 양아들)과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정영기(현 롯데 2군 감독)와 임호균등을 통해 정상등극을 하게 됩니다.
(당시 코치가 바로 일본에서 데려온 도이와 한화의 첫우승을 이룬 이희수. 이희수씨는 이후 강병철과 롯데와의 관계가 틀어진 주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시로썬 최동원 한팔에 의지한 우승이라고 폄하되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영기, 한문연등을 기용하면서 센터라인의 수비를 안정화시키고 안창완, 배경환등을 기용하면서 변변치 않은 팀전력 속에서 나름대로 최동원의 팔을 쉬게 한것도 일조한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네티즌들의 말대로 아무생각 없이 수시로 등판 시켰다면 정작 중요할때 내지 못하고 팀은 지고 말았을테니...

하지만 86년 해태와 삼성에게 밀리면서 5위를 기록하고 무엇보다 코치인선을 두고 롯데 프런트와 부딪히면서 롯데를 떠나게됩니다(일명 과자값 발언). "부산쪽으로는 오줌도 안싼다" 라는 발언을 남기며 떠났는데 얼마나 경남고 중심의 롯데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는지 설명해주는 발언이 아닐까합니다.

이후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김영덕을 보좌하여 빙그레의 코치로 있으며 빙그레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하는데 빙그레 감독 자리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심한 배신감을 간직한채 또 다시 롯데로 컴백하게 됩니다.(1991년)

당시는 김응용 감독의 지휘아래 김성한 이순철 조계현 송유석 선동열 한대화 등을 앞세운 해태와 김영덕 감독의 부임아래 이정훈 이강돈 지화동 장종훈 이중화 김상국 한용덕 송진우 이상군 한희민등을 앞세운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빙그레가 단연 두각을 나타낸 해 이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롯데와 삼성의 영남세는 다소 약세였습니다.

91년 롯데는 강병철 감독을 다시 부릅니다. 86년 갈등을 일으킨 주요인물 이었던 박종환 상무는 떠났고 무엇보다 빙그레 감독 자릴 두고 김영덕 감독과 틀어질대로 틀어진 터라 더이상 빙그레에 있을 이유가 없었죠.

91년 롯데감독 자리에 부임하자마자 특기인 세대교체를 가속화합니다.

89년 입단한 김선일, 이종운, (김청수)
90년 입단한 (전봉석), 공필성
91년 입단한 김태형, 박정태, 전준호
92년 입단한 강성우, 박계원, 김상현

플러스 고졸 김민재까지....(김민재는 염종석의 프로입단 1년 선배)

이상의 선수들이 강병철 감독이 부임후 발굴 또는 성장시킨 선수들입니다.

89년 입단해 조명받지 못하던 이종운과 90년 기대를 받으며 입단했지만 유격수 수비에 문제를 보이던 공필성은 92년에 이르러 박계원의 입단후 3루수로 포지션 변경한 뒤 상당한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게다가 향후 10년동안 부산팬들을 사로잡은 선택을 하게 되는데 바로 경성대 출신의 박정태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당시의 롯데 스카우트팀 으로썬 꽤나 고심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롯데는 좌타 일색에 교타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제일 필요한 타자는 우타거포였지만 1차지명의 경합을 한 타자들은 동아대 출신 좌타 거포 김상재(현 개성고 감독)와 바로 경성대 출신의 우타 내야수 박정태였죠.

일찌감치 이름을 알리고 있던 김상재에 비해 대학에서도 비교적 늦게 이름이 알려진 박정태를 팬들이 원할리가 없었죠. 해서 대부분의 팬들은 일찌감치 거포 김상재에 관심을 가졌지만 의외로 롯데는 교타자 박정태를 선택하게 됩니다.
비록 시합중 실책은 저지르는 내야수 였지만 1차 지명 출신인 공필성도 있었고 김인호에 향후 연고지역 출신의 국가대표 유격수이던 박계원도 대학에 있었던 터라 박정태의 지명은 충분히 팬들로 하여금 비난을 받을 일이었죠.

독특한 타격폼에서 기인하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걷어내고 박정태는 입단 첫해부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이런 젊은 선수들의 활약에 기인하여 롯데는 정규시즌 4위의 성적을 거두며 강감독 부임 첫해 포스트시즌을 치루게 됩니다.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1 로 팽팽한 승부끝에 롯데의 선발은 박동희, 삼성의 선발은 김성길이 나와 환상적인 투수전을 보여주지만 아쉽게도 롯데의 패배.(당해년도 삼성의 감독은 김성근)

하지만 부임첫해 정규리그 4위를 거두며 1992년에 대한 팬과 구단의 기대는 급상승하게 됩니다..

To be continued.........(글이 너무 길어질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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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성실현진 2007/09/14 23:29 # 답글

    86년 롯데는 강병철 감독을 다시 부릅니다. <-이부분에 오타가 있네요. 올시즌 끝나고 물러날 가능성이 크지 않나 생각되는데 롯데감독 이후 특히 00년대 재임기간내 결실을 보지 못하는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젊은 야수들을 발굴해내고 밀어주는 것으로 본다면 상당히 좋은 감독이지요. 96년 이후 10여년만에 다시 포스트 진출을 이루기를 바랬는데 선발진이 제몫을 못해준 것이 참 크네요. 김주찬, 이원석, 이인구는 내년에 확실히 좋아지겠지요.
  • 奉孝 2007/09/15 00:21 # 답글

    정정했습니다. 몇번이고 훑어보고 오류없이 적는다고 적었는데....ㅡㅜ;;

    성실현진님께서 댓글로나마 빙그레쪽 이야기도 해주셨으면 더 좋으셨을텐데요. 지금에 생각해보면 당시는 확실히 빙그레, 삼성, 해태가 리그의 강자였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빙그레는 센터라인이, 삼성은 포수와 투수 배터리가, 그리고 해태는 전체적 선수층의 얇음이 단점이 아니었나 생각하지만 확실히 리그를 제압해 나간 힘 자체는 뛰어났던 팀들이었죠.
  • 巨人 2007/09/15 00:21 # 답글

    롯데가 가장 최근에 포스트시즌 진출은 2000년이죠.....

    84 우승에 있어서 저는
    홍문종의 영입과 임호균의 트레이드를 성공작으로 보는데요.....
    (물론 저때 제 나이는...-_-)
    특히 임호균의 트레이드는 대형 트레이드였다는 점을 생각해 봤을때,
    과감한 시도였고, 그에 따른 보상도 큰 것 같습니다.
    (High Risk, High Return)


    그나저나 김상재씨 타자출신이었군요.....
    근데 개성고 타격은 왜 그 모양일까요?ㅡ.ㅡ;;
  • 奉孝 2007/09/15 00:31 # 답글

    홍문종 말씀하시니 하나더...

    보통 다수의 야구팬들이 홍문종의 고의사구 사건만 기억하고 김용철의 고의사구 사건을 생각들을 못하시더군요.

    당시 트리플 크라운을 이만수가 앞두고 있었는데 타율부분에선 홍문종에게, 홈런부분에선 김용철에게 바짝 쫓기고 있었습니다.

    해서 김영덕 감독은 고의사구 지시를 내리죠. 김영덕 감독의 제자사랑이라곤 해도 롯데팬들로썬 참으로 아쉬운 순간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 奉孝 2007/09/15 00:50 # 답글

    본문엔 적지 않았지만 86년 강감독이 떠난데는 이희수씨의 코치기용 여부가 중요이유였습니다. 강감독은 줄기차게 이희수씨를 데리고 갈려고했지만 롯데측에서 허구연등의 경남고 인사들을 끌어안을려고 했죠.

    이희수씨는 결국 한화에서 강감독 이후 감독으로 부임하여 한화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었는데 당시 강병철 감독의 심정이 어땠을까도 궁급합니다
  • 성실현진 2007/09/15 00:51 # 답글

    빙그레 때는 제가 너무 어릴때라 ㅎㅎ 92년 롯데의 우승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성근-김응룡-김영덕을 차례로 발라버렸던가요. 강병철 감독이 한화팬들에게 많은 원성을 받고 있지만 저는 좋게 봅니다. 부임할 당시 한화라는 팀은 주전의 노쇠화 얇아진 선수층으로 인해 병든 닭이나 다름없는 팀이었고 개혁이 필요할 때였죠. 이민호, 박지상, 정영규, 정경훈같은 유망주들이 한해 반짝하다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요. 결국 송지만, 이영우, 홍원기, 백재호 들로 다시 그자리를 메워야 했으니까요. 99년 한화가 우승한데는 강병철 감독이 일구어 놓고 간 것이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상목을 데려왔고 송지만, 이영우가 99년 포텐셜을 폭발하는데에는 강병철 감독의 공이 컸다고 봅니다. 혹자는 원래부터 잘했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처음부터 기회자체를 박탈하는 감독도 있으니까요.
  • 奉孝 2007/09/15 00:52 # 답글

    잠시 제가 이름을 착각했습니다. 계속 성실현진님께 걸리네요.^^ㅋ
  • 奉孝 2007/09/15 00:53 # 답글

    한화나 롯데나 학연에서 자유로워져야 할텐데요. 참..
  • 성실현진 2007/09/15 01:10 # 답글

    차기감독으로 유력하다는 그분이 다음감독이 되실 경우 막막하기는 합니다. 선수단의 질이나 아니면 코칭스태프의 인선 문제나...ㅎㅎ 이닝에도 글을 올리기는 했는데 현감독이 물러날때면 주력투수들은 죄다 은퇴아니면 군대행이 대두되니까요. 차기감독으로 유력한 그분이 그 난관을 헤쳐나갈수 있는 리더쉽의 소유자로는 절대 안보이는데...최동원 2군감독이 어떻게든 남게 되셨으면 하는데 들리는 풍문으로 보면 힘들것 같고...쩝...
  • 奉孝 2007/09/15 10:18 # 답글

    현진님께서 말씀하신 그분은 코치로써의 그것보다 감독으로써의 지도력은 세간에 알려진바 보다 좋다고하지요.
    하지만 이미 김인식 감독을 따라온 두산출신의 프런트와 지금은 어느정도 밀려난 북일출신 프런트간에 알력이 전면적으로 대두되는것이 더 우려스럽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분이 지도력은 있을지 몰라도 그런 내흥을 이겨낸다는건 좀 어렵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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