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은 한국야구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합니다. 1990년까지 7개 팀으로 1군 게임이 진행되던 한국야구가 본격적으로 8개팀이 참가한 해입니다.
애시당초 연고지역을 마산을 목표로 창단하고자 했지만 여러가지 야구외적인 개입으로 인해 전주를 연고로 1990년 창단, 1군 무대엔 1991년부터 참가하게 되죠. 하지만 7,8위를 오가며 만년 꼴찌팀으로 각인이 됩니다.
게다가 수퍼한일게임에서 일본의 야구장에서 장종훈이 일본 투수 기사하라로부터 장외홈런을 뽑아내면서 한일 야구 관계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구장은 나가라가와 구장, 당시 공이 떨어진 자리엔 장종훈 기념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전체 기록은 2승 4패로 일본의 우세)
1992년은 빙그레의 해였습니다. 선동렬이 어깨 건초염으로 빠진 해태와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세대교체의 과도기가 겹친 삼성 을 제치고 1992년 패넌트레이스를 주도하죠.
시즌 초반에 부진하던 빙그레는 5월경 김영덕 감독의 삭발을 기점으로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90년부터 두각을 보이던 연습생 출신의 장종훈은 한국야구 최초로 40홈런을 넘기고 송진우는 19승 17세이브(11 구원승)을 올리며 막강 빙그레 구단을 이끌죠. 이 외에도 이상군 장정순 정민철 김홍명 한용덕 이중화 이강돈 지화동 지화선 이정훈 김상국 양용모 강정길 강석천 전대영 조양근 등이 조화되어 92년 패넌트레이스 우승을 거머쥡니다.
롯데 또한 강병철 감독 특유의 hit & run 야구를 토대로 전준호 이종운 공필성 김응국 김민호 박정태 김선일 박계원등이 활약하며 빙그레 해태 의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당시 신인이던 전준호와 중고신인인 이종운을 기용하며 기동력을 극대화하고 신인 박계원을 내야수비의 핵심인 유격수 자리에 기용하고 "움직이는 화약고" 라고 불리울 정도의 불안한 수비를 보이던 공필성을 3루로 돌리며 내야수비의 안정화를 꾀하죠.(이른바 센터라인의 안정화)
특히 중고신인 이종운(현 경남고 감독)은 강병철 감독이 부임하면서 뱃을 짧게 쥐는 반토막 타법으로 3루타 신기록(13개)을 세우며 "3루타의 사나이" 로 불리우고 이들의 백업을 한영준(현 두산코치)과 조성옥(현 동의대 감독)이 받추주면서 장타력은 없지만 단단한 응집력으로 한게임 한게임을 이겨나가죠.
특히 투수 부분에서도 리빌딩을 꽤하는데 윤형배(8승), 김상현(7승), 염종석(17승 6세이브)등이 가세하며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을 도와주며 92년 우승에 일조하게 됩니다.(기대하던 신인인 박동희는 전년의 14승에 비해 92년은 8승으로 다소 부진)
특히 이 시기는 롯데의 포수진이 제일 좋을때로 기존의 김선일과 신인 강성우 콤비는 당시 8개 구단 중 최고였습니다. 93년 강성우 김선일 두 포수가 모두 1군에서 보지 못할때도 2군의 전봉석이 나와서 도루저지 투수리드에서 상당한 실력을 보여주며 팀 완봉승을 몇번씩이나 이끌었었죠.
패넌트레이스 3위.
가을잔치에 나간 롯데는 91년과 마찬가지로 김성근의 삼성을 상대로 하지만 91년을 패배를 설욕하며 해태를 맞이합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롯데의 포스트 시즌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이 아니었지만 해태와의 플레이오프전에서 시리즈 스코어 2-1 로 뒤지다가 공필성의 몸을 날리는 수비(1-3루간의 직선타구를 다이빙 캐치)와 염종석의 호투를 발판으로 극적인 2연승을 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됩니다.
당시 김영덕 - 강병철, 김성근 간에 감정이 좋지 않았던 데다가 이상하리만치 선동렬 컴플렉스가 심했던 빙그레 김영덕 감독은 롯데-해태 플레이오프전이 시작되기전 "해태가 이겼으면 좋겠다", "해태를 상대로 싸워 진정한 승자가 되고싶다"고 하며 미리 롯데 강병철 감독의 신경을 건드리고 또한 롯데가 3-2 로 시리즈를 이기자 "우승은 당연히 빙그레의 것" 이라고 하는등 강병철과 김영덕 간의 신경전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시작한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은 골든글러브가 유력시되던 송진우와 91년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보였던 박동희.
누구나 송진우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이날따라 유독 박동희의 공이 잘 긁혔던 반면 송진우는 초반 난타당하면서 의외로 쉽게 롯데가 1승을 올립니다.
2차전 역시 태평양 안병원, 롯데 염종석과 같이 고졸 돌풍을 일으켰던 정민철이 등판한 반면 롯데는 윤형배를 내새웠는데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한듯 3-2로 패하죠. 완봉을 앞두고 있던 윤형배는 9회말에 힘이들어간듯 공이 가운데로 몰리게 되는데 이런 공을 놓칠 빙그레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아니었죠. 하지만 빙그레가 1점차로 다가오자 강병철 감독은 1차전 선발로 나왔던 박동희를 투입, 승부를 롯데로 가져옵니다.
2-0으로 뒤진채 부산을 내려온 빙그레. 이미 김영덕 감독에겐 여유란 사라졌고 한용덕을 투입하며 배수의 진을 칩니다.(롯데 선발은 윤학길) 게임 초반엔 사기가 오른 롯데답게 한용덕을 몰아붙이지만 김영덕은 5회에 송진우를 투입하는 강수를 두며 게임을 빙그레로 가져오죠.(하지만 그때의 송진우 투입이 오히려 해가 됩니다)
후에 벌어진 4차전에선 정민철과 염종석 고졸신인의 대결이 되는데 정민철이 다소 쉽게 무너지고 5차전에선 한국시리즈에 물이 오를 박동희가 역투하며 롯데 역사상 두번째의 우승을 거둡니다. 한국시리즈 MVP 박동희.
반면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선보였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경험과 선수층에서 약점을 드러내며 7위를 기록하고 당시만 해도 만년 하위팀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태평양 돌핀스는 고졸 신인 안병원이 10승을 올리며 활약하지만 정민태 정명원 박정현 등의 주력투수들이 모두 부상에 시달리며 부진한 결과 하위권에 머무르게 됩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여러가지 시상이 이루어지는데 시즌 MVP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40홈런을 기록한 장종훈이, 한국시리즈 MVP는 맘모스 박동희가, 신인왕은 염종석이 타게 됩니다.(염종석은 롯데 유일한 신인왕이기도 합니다)
연속해 벌어지는 시상식인 골든글러브에서 다소 이해하기 힘든 결과가 나오는데 바로 다승과 구원부분 2개부분에 이름을 올려놨던 송진우를 제치고 17승을 차지한 염종석이 골든글러브를 차지하게 되죠.
이전부터 있었던 타이틀 밀어주기, 84년의 져주기 게임에 대한 이전부터의 김영덕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과 92년 역시 다승부분에서 송진우를 바짝 쫗던 이강철을 두고 막판 몇게임에서 고의적인 경기후반부 송진우의 등판, 그리고 무엇보다 재일교포라는 당시 한국에서 애매모호했던 신분(흔히 말하는 연줄)이 걸림돌이 되면서 그 피해가 송진우라는 거물급 선수에게 악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였습니다.(당시 송진우는 19승 17세이브로 다승, 구원 부분 2관왕)
당시의 언론들은 대부분은 롯데보다는 빙그레의 우위를 점쳤지만 한국시리즈전의 김영덕 감독의 자극적인 발언이 오히려 롯데내 선수들에게 자극제가 되면서 우승을 하게 되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빙그레 팀내에서 김영덕 감독의 입지가 약해지는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반면 80년대의 최강자 해태는 이순철 이건열 이호성 한대화 김성한 홍현우 박철우 장채근 등으로 이루어진 빈틈없는 타선을 구축하지만 끝내 선동렬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롯데에게 패권을 넘기죠.
롯데에 복귀하여 기존의 선수들에 더하여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며 팀의 조화를 꾀하고 또한 이들을 정신적으로 뭉치게 하여 장타력 없는 공포의 타선을 구축하게 되고 비록 염종석의 무리한 투구가 있긴 했습니다만 윤형배 김상현 박동희 등을 신뢰하며 92년의 성적 뿐만 아니라 93년 이후도 생각하는 팀으로 전환하게 되는 결정적인 두시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는 장종훈과 김영덕 감독이 TV cf 에도 출연하는등 야구선수들의 인기가 절정에 치달을때였는데 유난히도 롯데내 젊은 선수들이 많이 나온 시절이라는 점에서 충분기 기억을 더듬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들은 염종석 한팔에 의지한 우승이라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염종석 외에도 윤학길(17승)을 중심으로 윤형배(8승), 김상현(7승 4s), 박동희(7승) 등의 젊은 투수들과 강병철 감독이 발굴한 젊은 타자들의 조화에 기인한 92시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92년의 모습으로 인해 팬들간에 염종석 vs 정민철 의 논쟁이 시작되는데 팬들간에서야 쪽수가 많은 롯데 염종석의 편을 많이 들어줬지만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정민철의 팔을 들어줬습니다. 매끄러운 투구폼에 종속 좋은 직구가 높은 점수를 얻은 정민철에 반해 고교시절 구타로 인해 이미 허리가 정상이 아니었던 염종석은 투구폼에서도 투구후 마치 1루측 덕아웃으로 뛰어들어가는 듯한 요상한 투구폼과 투구시 손목이 곱아나오는 점으로 인해 점수를 많이 깍였었습니다. 특히 선동렬씨는 3년이상 꾸준하지 못할것이라며 혹평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정민철" 이라고 했거든요.


덧글
긴오후 2007/09/17 17:08 # 삭제 답글
1992년이라는 공간은 현재의 하위권에 있는 롯데 자이언츠의 풀리지 않는 답을 제시할수 있는 한해라고 생각합니다. 빠른 선수들과 그 빠른발의 실패에 대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선수들 ...주자가 나간 상황에서 히트앤드런을 받쳐줄수 있는 선수들의 기량이 평준화 된 타격... 그리고 원투펀치까지 ... 지금의 두산과 같은 그림을 보는것 같았습니다.김선일 ...정말 제 기억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네요 ...
제가 요즘 주위에서 오버한다고 여기저기서 한소리를 들었습니다. 혹시 여기저기 그런 흔적들을 남기것 같은 자책감이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봉효님 소중하게 간직하던 잊지못할 동영상 하나를 꺼내 본듯한 느낌입니다. 그 느낌을 감사드립니다.
巨人 2007/09/17 20:32 # 답글
제가 야구를 보기 전의 이야기라서 잘 모르는데....멋진 글 잘 봤습니다.
그런데 1992년의 염종석, 1984년의 최동원
이 둘로 우승을 일궈냈다는 의견은
쉽게 사라지기 힘든 현상 같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강병철 감독을 깔 수 있는게 사실이고-_-;;;
그렇게 해야만 최동원팬들 입장에선
훗날 못한 결과에 대한 이해를 받아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이건 염종석팬들도 마찬가지더군요)
오히려 잘 못 되었다고 지적하면 더 까이는..........
奉孝 2007/09/17 20:46 # 답글
긴오후님/ 좋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교육에서 역사부분을 중요시하는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오늘날을 이해하고 발전될 미래에 대한 근거 제시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선 자국의 역사보다 타국의 언어가 더 중요시 되는 풍토이다보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좀 약하지 않나 생각합니다.거인님/ 84년 임호균이야 연고스타가 아니었으니 팬들의 인식이 부족하더라도 92년의 윤학길은 송진우 이강철과 함께 다승을 경쟁했던 완투형 피쳐였습니다. 롯데팬들이 그렇게 롯데의 과거사를 인식하고 있다면 롯데란 팀 내에서 염종석 이상의 대투수였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염종석 같은 경우는 고교시절의 구타로 인해 이미 허리쪽에 이상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투구후 1루쪽으로 달려나가는 투구폼까지....
이러한 투구폼으로 인해 당시 모든 전문가들이 정민철 vs 염종석 논쟁에서 정민철의 팔을 들어줬죠. 특히 선동렬은 염종석에게 혹평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奉孝 2007/09/17 20:51 # 답글
염종석 vs 정민철 부분을 소소하게나마 마지막에 덧붙였습니다.
검객 2007/09/17 22:49 # 삭제 답글
염종석 선수 언제나 보면 안타까움이 먼저 드는 선수 입니다.
奉孝 2007/09/17 22:56 # 답글
부고시절 구타가 너무 컸었습니다. 번트수비를 버벅거리다가 게임에 지고 선배들에게 허리부분을 집중구타 당했고 그 이후론 이상한 투구폼을 가지고 던지다가 부상을 불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물론 프로에서도 번트 수비할땐 많이 버벅거렸지요..
성실현진 2007/09/19 19:14 # 답글
이미지라는게 참으로 무섭죠. 96년 강병철 하의 구대성 97년 김성근 하의 김현욱, 98년 김인식 하의 진필중...혹사논쟁에서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 것이 96년의 구대성과 97년의 김현욱인데 저중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것은 98년의 진필중이었죠. 작년 올해 류현진도 김성근 감독이나 강병철 감독이 그렇게 굴렸으면 아마 야구사이트들 난리났겠죠. 국민감독인지 뭐시깽이인지 여서는 몰라도 그 감독은 혹사시킨다는 말도 들으면 안되나 봅니다. 류현진도 서서히 한계가 오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奉孝 2007/09/19 19:26 # 답글
성실현진님/ 그렇죠 맞습니다. 언젠가 차명주가 김인식 감독하에서 84게임을 등판한적도 있었죠. 어지간한 필드플레이어 못지않은 게임 출장수 였는데 여전히 많은 팬들에겐 덕장 덕장...이번 정준하도 명백히 탈세라는 중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을이 응원하는거 보면 내적인 어떤것보다 정말 대외적인 이미지가 중요한가 봅니다. 아마 정치인이 탈세했다고 하면 난리났을 겁니다.
奉孝 2007/09/19 19:35 # 답글
류현진은 마치 구대성을 보는것 같습니다.구대성 한창때 지금보다 팔 각도가 조금 위였죠. 쓰리쿼터 비슷한......
그때 구대성의 구위는 정말 천하무적이었습니다. 돌직구가 대각선으로 내리꽂는 투구는 가히 일품이었죠. 비디오로 찍어서 박물관에 보관해야 한다는 말도 있었을 정도로...
혹사가 진행되면서 구대성의 팔스윙 각도도 내려갔는데 참 안타까웠죠.
성실현진 2007/09/19 19:51 # 답글
차명주도 차명주지만 이혜천도 장난아니게 굴렀죠. 데뷔 2년차부터 김인식 감독이 물러날 03년까지 5년간 269경기를 나왔으니 뭐...그 나이때 그런 혹사를 견뎌내고 여전히 145를 넘나드는 공을 뿌리는 이혜천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위는 예전보다 무뎌지기는 했지만...박명환도 데뷔후 3년간 많이 던졌죠. 초토화된 오비마운드에서 고졸에이스로 활약했던 박명환...지금은 박배추, 여름에는 휴가가야한다라는 비아냥을 듣기는 했지만 98년의 이닝이터로서의 모습이나 도미네이트했던 구위는 참으로 대단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4사구가 워낙 많아 200이닝은 넘기지 못했지만요. ㅎㅎ
奉孝 2007/09/19 19:56 # 답글
현진님 댓글보니 김인식 정말 대단한것 같습니다. 굴려먹을 선수들은 철저하게 굴려먹으면서 언론과의 친화력을 이용해서 덕장 이미지를 쌓았죠.게다가 대부분은 윤동균이 깔아준 선수들 데리고선 시즌을 운영했으니 이건 뭐..... 호사도 그런 호사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한일은행 시절의 김영덕 패밀리중 인식할배 빼고선 언론에 호의적으로 비춰지는 감독들은 없네요. 최근 김성근 감독이 약간 호의적이긴 합니다만...
한일은행 시절 감독이 김영덕, 코치가 김응용, 그리고 선수가 김인식과 강병철이었죠.
성실현진 2007/09/19 20:04 # 답글
위에 269경기가 아니라 369경기로 정정합니다. 어쩌다가 269경기로...;;;;예전에 이광환과 김인식 감독이 투수어깨는 분필과 같다면서 투수혹사에 대한 비판을 한적이 있는데 저 두감독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광환은 이상훈과 30대후반의 투수를 220이닝 이상 던지게 한 경력이 있고 김인식이야 따로 덧붙일 필요가 없겠죠. 투수혹사에 관한한 어느감독이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혹사로 망가진 투수들의 숫자를 비교해보면 김인식>김성근>강병철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팬들의 여론을 보면 거꾸로 되었죠. 만만한 사람부터 쵸낸 까는 것이 이바닥이기는 하지만...
奉孝 2007/09/19 20:37 # 답글
반면 김성근씨랑 강병철씨는 투수어깨는 던질수록 강해진다 쪽이시죠. 아직 그쪽에 대해선 확실화된 논문조차 없다고들 하는데....투수혹사에 관하여 어떤 감독도 같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다만 80년대에서 90년대의 초반에 이르는 시대적 배경과 관중들의 열망....
어떻게 보면 언론플레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사실 강감독은 지지리도 언론플레이 못하는것으로 유명하고 김성근 감독도 올해전까진 언론플레이 같은건 안했으니....
성실현진 2007/09/19 20:57 # 답글
90년대 초까지야 뭐 로테이션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4일휴식도 제대로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채 10년도 안되는 걸로 압니다.이희수 감독이 우승을 하기는 했지만 다음해 처참히 무너진 것은 에이스의 해외진출도 있지만 전년도 3일휴식을 기반으로 한 투수운용이 컸지요. 선수협 사태로 인해 초반 합류가 힘들어진 송진우를 대신해 에이스로 던져줄수 있었던 포크볼의 귀재 이상목이 아작나버렸으니까요. 01년부터 4일휴식이 제대로 주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90년대 휴식일을 제대로 지켜준 팀은 98년 현대가 유일무이하지 않았을지...하지만 다음해 투수진이 무너지자 현대도 정민태를 줄창 굴렸죠. 한동안의 마무리 알바를 하면서도 230이닝을 넘게 던졌던 정민태...그때 무리만 안했어도 지금 이렇게 곤욕을 치루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일본에서도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테고요.
奉孝 2007/09/19 21:04 # 답글
선발예고제가 실시된것도 10년이 채 안되죠. 90년대 초반까지 가짜 선발을 등판시키고선 상대방 라인업 보고 다시 투수교체 하고 그러면 다시 상대팀은 대타를 내세우고....이런 상황에서 정해진 투구등판 간격이 있을리가 없었죠. 오늘 선발 내일 마무리 그다음은 중간.... 사실 강속구 투수였던 송진우도 그러면서 망가졌고 강병철 시절 제구력 투수로 탈바꿈한거 아니겠습니까?
80년대의 혹사는 감독 탓을 하기엔 좀 그렇습니다. 다만 말씀하셨듯이 편향된 여론몰이는 안된다고 생각이 드네요.
巨人 2007/09/19 21:29 # 답글
롯데 김용희감독이 거의 유일하게 혹사에 대해선 자유로운 감독 아닌가요?그러나 별로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죠.....
(롯데에선 몇 안되는 준우승도 했는데ㅋㅋ)
하여튼 이미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인식의 리더론?인가....
책도 나왔죠;;;
奉孝 2007/09/19 21:36 # 답글
김용희 감독이 인내심이 참 좋았죠. 팀 사정이 그리 급한데도 문동환 손민한 차명주 등을 아끼면서 시즌운영 하셨으니...95시즌 한국시리즈에서 조금만 참으시고 김경환의 등판을 다음해로 미루셨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그때 김경환 구위 정말 무시무시 하더군요.
성실현진 2007/09/19 21:38 # 답글
'김인식리더쉽'이라는 책이죠. ㅎㅎ 압도적인 문구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모든 선수에게 준 공평한 기회로 성공을 일궈낸 김인식 파워!';;;;;지금보면 상당히 웃기고도 재미있는 책입니다. 김용희 감독도 주형광을 무지 굴렸죠. 류현진과 같은 나이에 2년연속 200이닝을 넘겼으니까요...박지철도 97년 김현욱에는 조금 못미치지만 무리좀 했고요...
巨人 2007/09/19 21:47 # 답글
그러고 보니 95년 주형광이 생각보다 승수가 작군요.....96년은 막판에 구대성하고 자존심싸움? 같은게 붙어서
혹사한 기억이 나는데....
10년 지난일인지 생각이 잘 안나긴 하네요;;
99년의 경우 전반기때 상당히 잘나가다가(대략 20승 포스로...)
후반기때 다 꼴아먹었던 기억이 있고.......
제가 야구를 잘 모르고 보던 시절이라 잘 몰랐는데....
200이닝이 넘었군요 ㅋ;;
奉孝 2007/09/19 21:51 # 답글
아마 그당시는 윤형배 김상현이 군입대 시절이라 4선발 체제로 갔던 것으로....;;당시 주형광은 잘던지다가도 어느날은 5실점씩해서 오형광이라 부르던 것도 기억에 나네요.ㅋ
奉孝 2007/09/19 21:55 # 답글
아무런 선입견 없이....ㅎㅎ그럼 왜 송광민은 아직 2군을 전전하고 있는건지....;;
巨人 2007/09/19 22:01 # 답글
그러고 보니 95년에 염종석이 방위지 않았나요?홈경기 첫경기는 무조건 염종석이 선발이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화~일 시리즈면
화요일하고 일요일은 염종석이 나왔던......
윤형배, 김상현 둘다 95년엔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96년에 군대갔나 보군요...
주형광은 95년 PO때 LG전에서 1안타 완봉하면서
급격히 좋아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당시 1안타도 빗맞은 안타였던;;)
성실현진 2007/09/19 22:03 # 답글
올해 6월부터 계속 1군에 있었는데 27타석 들어섰죠. 데뷔후 2년 동안 올시즌 상당수 롯데팬들이 강병철 감독이 기회를 안준다고 하는 손용석보다 기회를 못 얻은 것이 송광민이죠. 손용석보다 수비를 못하는 것은 저도 인정을 하는데 송광민이 첫 모습이 결코 손용석보다 떨어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올해는 손용석이 더 낫지요. ㅎㅎ 대전에서만 나왔으면 홈런 두개는 쳤을텐데 잠실이라 ㅎㅎ
巨人 2007/09/19 22:06 # 답글
저야 송광민을 제대로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고....손용석은 거품이 있어서요.........
구대성한테만 강한 느낌이;;;
奉孝 2007/09/19 22:06 # 답글
손용석은 직구 전용이지만 (아무래도 임수민 다운버젼이 될듯) 송광민은 슬라이더도 기차게 받아치는데요. 한화내 그 어떤 신인도 이도형이랑 비교하면 우위에 오르죠. 참 그놈의 이도형 사랑이란....이도형을 왜 좋아하는지는 정말 한국야구 10대 불가사의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ㅋ
성실현진 2007/09/19 22:08 # 답글
손용석 요새는 살좀 빠졌나요. 3루수로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싶은데 작년 캠프에서 3루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奉孝 2007/09/19 22:09 # 답글
아닙니다. 뱃살이 거침없이 늘고있습니다. 손사장이죠.ㅋ
성실현진 2007/09/19 22:14 # 답글
천상 지명타자로 컨버전 해야 하는 건가요...쩝...더 불어났다면 2루는 절대불가겠군요...어린 놈들이 쩝쩝...
巨人 2007/09/19 22:22 # 답글
그래도 고교시절보단 빠졌죠....거기에 위안을 둡니다;;
물론 롯데 다이어트 프로그램할때에 비해선
좀 쪘습니다만...........
(그땐 손용석이 프로에서 성공할줄 알았다는;;)
奉孝 2007/09/19 22:27 # 답글
제 생각엔 손용석은 대타정도로 만족하는것이 좋을듯합니다. 그냥 그정도로 생각하는것이 여러모로 좋을듯한...
우기 2007/10/01 02:06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오랜만에 들러 글읽고 갑니다.ㅎㅎ 이글들을 보니 어릴떄 롯데 어린이팬들어서 잠바랑 모자쓰고 야구구경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ㅎㅎ지화돈이 아니라 지화동인걸로 기억되는데..가물가물.ㅎㅎ
김태형 그러니깐 좌완 부산공고인가? 부산상고인가?
92년도 시범경기떄 야구보러갔는데 김태형이다 하고 착각한 선수가 염종석선수였던 기억이..ㅋㅋ 속으로 아참 김태형은 왼손이지..ㅎㅎ하고 생각했었는데.ㅎㅎ 김태형선수도 아쉽긴 하지만 한해 10승하고 사라지긴 했지만 정말 좋아했었는데 전 어릴때 초등학교다닐떄라 가물가물한데 구덕에서 봤으니 화랑기였겠네요.ㅎ 아버지 손잡고 김태형선수 첨보고 좋아했었는데 롯데에서 다시보니 너무 좋던데..ㅎㅎ제가 생각할떄는 더 잘할수있을꺼라 생각했는데 부상인가.....아무튼 사라지고 비슷한 스탈인 주형광선수가 나와서 잊혀져지긴 했지만 .. 아쉬워했었는데... 염종석얘기가 나오니 김태형선수가 생각나네여.. 지금생각해보면 키부터가 다른데.ㅎㅎ
奉孝 2007/10/01 10:51 # 답글
오타 수정했습니다.김태형이나 염종석이나 서정민이나 모두 안경낀데다가 외모가 비슷비슷했었지요.ㅎㅎ 김태형이 부상으로 사라졌지요. 안타까운 선수중 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巨人 2007/10/01 13:14 # 답글
김태형은 살이 약간 찌지 않았나요?약간 통통한게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제가 처음 야구보던 시절이 기억이 가물가물;;)